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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묻는 나그네>의 세상이야기

두 얼굴의 시인 / '노천명'

peter홍 2025. 9. 1. 04:07

우리들은 지난 역사를 배우는데,

너무 허술하게 배웠다.

 

'노천명'이라는 詩人이 이런 二重性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몰랐다.

잘 안가르켜 준 선생들이 문제가 있다.

歷史는 항상 眞實을 안고 끝까지 간다.

그녀는 죽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사슴의 시인, 평생을 독신으로 고독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한국 문학에 이름을 남겼다.
뛰어난 시어 사용과 감상적인 작품으로 이름난 문인이자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개명 전 원명은 노기선(盧基善)이며 황해도 장연군(長淵)에서
아버지 노계일(盧啓一)과 어머니 의성 김씨 김홍기(金鴻基) 사이의 딸로 태어났다.
1930년 3월에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에 진학하여
1934년 봄에 졸업하였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입사해 학예부 기자로 4년간 근무하면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 <사슴>을 발표하였다.
1938년에 조선중앙일보를 퇴사해 조선일보의 학예부 기자가 되었는데
4년 동안 조선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여성(女性) 지의 편집인이 되어 여성지 편집을 맡아 보았다.


사 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그러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태평양 전쟁 중이던 1942년 친일 문화 단체인 '조선문인협회'에 가입하여
전쟁을 찬양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선동하는 시를 발표하였다.
1943년에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입사하여
문화부 기자가 되어 '승전의 날', '출정하는 동생에게', '진혼가', '노래하자 이날을',
'흰 비둘기를 날리며' 등 다수의 친일 시를 발표했다.
대표적인 친일 시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가 있는데 아래가 그 내용이다.
 
 
남아면 군복 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드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갑옷 떨쳐입고 머리에 투구 쓰고
창검을 휘두르며 싸움터로 나감
남아의 장쾌한 기상이어든-

이제
아세아의 큰 운명을 걸고
우리의 숙원을 뿜으며
 영미를 치는 마당에랴

영문(營門)으로 들라는 우렁찬 나팔소리-

오랜만에
이 강산 골짜구니와 마을 구석구석을
흥분 속에 흔드네-
강사로 나가 출강하였으며 후에 부녀 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가 되기도 하였는데
1946년까지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있었다.
1949년에는 몇 편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처 피난하지 못한 그녀는 월북 임화, 김사량 등이 주도하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입하여 '문화인 총 궐기 대회' 등의 행사에 참가했다.
 대한민국 국군 서울을 수복한 뒤 좌익 분자 혐의를 받아 징역 20년을 선고받으나
여러 문인들의 도움으로 몇 개월 만에 사면되어 풀려났다.
이후 공보실 중앙 방송국(현 한국방송공사) 방송 담당 촉탁에 임명되기도 하고
3차 시집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지만
무리한 집필 활동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1957년 재생 불능성 뇌빈혈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