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지난 역사를 배우는데,
너무 허술하게 배웠다.
'노천명'이라는 詩人이 이런 二重性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몰랐다.
잘 안가르켜 준 선생들이 문제가 있다.
歷史는 항상 眞實을 안고 끝까지 간다.
그녀는 죽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2. 생애
1934년 봄에 졸업하였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입사해 학예부 기자로 4년간 근무하면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 <사슴>을 발표하였다.
1938년에 조선중앙일보를 퇴사해 조선일보의 학예부 기자가 되었는데
4년 동안 조선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여성(女性) 지의 편집인이 되어 여성지 편집을 맡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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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그러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
전쟁을 찬양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선동하는 시를 발표하였다.
문화부 기자가 되어 '승전의 날', '출정하는 동생에게', '진혼가', '노래하자 이날을',
'흰 비둘기를 날리며' 등 다수의 친일 시를 발표했다.
대표적인 친일 시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가 있는데 아래가 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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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드면 나도 사나이였드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갑옷 떨쳐입고 머리에 투구 쓰고 창검을 휘두르며 싸움터로 나감이 남아의 장쾌한 기상이어든- 이제 아세아의 큰 운명을 걸고 우리의 숙원을 뿜으며 저 영미를 치는 마당에랴 영문(營門)으로 들라는 우렁찬 나팔소리- 오랜만에 이 강산 골짜구니와 마을 구석구석을 흥분 속에 흔드네- |
강사로 나가 출강하였으며 후에 부녀 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가 되기도 하였는데
1949년에는 몇 편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입하여 '문화인 총 궐기 대회' 등의 행사에 참가했다.
여러 문인들의 도움으로 몇 개월 만에 사면되어 풀려났다.
3차 시집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지만
무리한 집필 활동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1957년 재생 불능성 뇌빈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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