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출신의 경제인.
'서갑호'(徐甲虎)[1915~1976]는
1915년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하잠리에서 태어났다.
14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지역의 포목상점에 들어가 견습사원이 되었다.
일본 패망 후 군수 물자 매매를 통해 큰 돈을 벌었다.
그 후, 방적기를 구입해 1948년 오사카에
사카모토 방적[坂本紡績]을 세워 사업가로 변신하였다.
사카모토 방적은 설립 4년 만인 1952년 오사카 지역 소득 순위 1위,
일본 전체 순위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1954년에서 1956년 오사카 방적 등을 인수하면서
전후 일본에서 8위의 방적그룹을 형성하였다.
그 후 금융 기관, 부동산 개발 회사 등 사카모토 방적을 모체로
13개 그룹사를 가진 재벌이 되었다.
서갑호는 군사 정권의 요청으로
한국산업은행이 관리하던 '태창방적'을 100만 달러에 인수하여
1963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에 사카모토 방적을 설립하였다.
재일 교포 최초의 국내 투자이었다.
사카모토 방적은 단기간에 엄청난 설비 투자를 통해 직조에서 염색까지
전 공정을 포괄하는 동양 최대의 방직업체가 되었다.
1967년에는 '방림방적'으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에서 2,870만 달러를 들여와
회사의 자본금을 대폭 확충하였다.
1968년부터 1974년에 걸쳐 구미공단에 동양 최대 규모의 윤성방적 공장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공장 완공 후 시험 가동하던 중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여 10여 개 공장이 전소되었다.
윤성방직의 화재는 국내에서 156억 원 상당의 손실을 초래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일본의 사카모토 그룹까지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사카모토 그룹은 1974년 9월 14일 첫 부도를 낸 뒤
오사카 재판소에 회사갱생법 적용을 신청하였으나 기각되어 파산하였다.
서갑호는 국내의 방림방적과 윤성방직의 정상화에 노력하였으나
섬유업계의 불황으로 자금난이 가중되는 과정에서 1976년 사망하였다.
1961년 공익포장, 1965년 동탑산업훈장, 1973년 국민훈장 목단장을 받았다.
사후에 서갑호의 공을 기려서 197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고,
1989년 10월 16일 주일대사관 부지를 기증해 준 것을 기념하여
주일대사관에서 기념비 제막식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갑호 [徐甲虎]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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