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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다 이민이야기

이민(移民) 이야기 -- 카나다 이민기(移民記) 2

peter홍 2006. 4. 11. 15:08

그 당시에는 델타 항공이 델타지역까지 운행을 하고 있었고

대한항공은 콜로라도 주 수도인 덴버까지만 운행하고 있었다.

3월 개학 두번째 주에 아이들을 결석을 시키고는

우리는 델타 항공을 타고  미국으로 들어갔는데,

미국 세관에서는 우리들이 오는지 어떻게 알고는.....

"유 아 홍스 패밀리?" 하는것이 아닌가?   이러면서 친절을 떨면서

내 지갑까지도 몽땅 다 뒤지는데야 정말 자존심이 많이 상해서 죽는줄 알았다.

그 당시에도 1인당 10,000불까지는 소지 할 수 가 있어

우리 가족이 보름동안 쓰려고 9천9백불을 가져 갔다.

만불이 넘으면 또 세관에 신고도 해야하고 귀찮으니까....

콜로라도 스프링스까지 직항 노선이 없어

미국 국내선을 한시간 반씩이나 날아서 2번이나 갈아타고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들어갔다.

들어간 첫날 밤만을 라이온 호텔에서 하루를 자고

아내 친구의 추천을 받아서 우리 아이들이 유학을 오게 되면 거처할 집까지(홈스테이)

소개 받고는 그 집에 거처를 정했다.

부인이 한국분으로 남자분은 현지 미국인이고 남편이 대학교 교수였는데,  부담도 되었지만,

유학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것 같아 그집에서 묵기로 한것이였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이 유학 올것을 전제로 아내 친구한테 소개를 받아서

우리 가족들을 자기네 집에서 유숙하게 한것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 12인승 봉고차까지 렌트를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세심한 배려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그 면담 예약을 한 사립 학교로 면담을 갔는데,

학교명은 잊어버렸지만, 전 미국에서 5번째 안에 드는 사립학교로서

한 학년에 학급씩밖에 없는 소수 정예의 학교였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있었는데....예전 귀족이 살던 집과 정원을  학교로 쓰는 곳이였다. 

교무 주임인 여선생이 나와 우리 가족들을 반겼는데

전형적인 시골 선생님 타잎이고 옷차림도 수수한 것이 이곳이 시골 동네라는 직감이 들었다.

특히 그 여선생이 우리 아이들의 볼에  볼을 부비며

 "먼 곳에서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면서 포근히 안아주는 것이였다.

학교를  안내하여 주는데....

한 학급에 12명이 원탁에 둘러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정교사 부교사 두명이 지도하고 있었다.

첫느낌이  공부하는 아이들이 학교가 아닌 넓은 정원에 놀러와서

원탁에 앉아 놀고있는 느낌의 아주 맘에드는 학교였다

1년 학비가 그 당시 13,000불이였는데....조금 비싼편이였지만,

한국 학생들은 아내 친구의 자녀들인 두 아이밖에 없었다.

유학을 뭐하러 가냐고 하던 큰 아이가 그 날 저녁에

"아빠 나 여기로 유학 올래" 하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러냐고 하였더니....선생님도 좋고 학교가 너무 마음에 든다면서

유학을 오겠다고 하는 것이였다.

그곳에서 우리 가족들은 3일을 거주하고는 우리 가족과 아내 친구와 함께

L.A로 나왔다.

거의 유학 올 마음을 굳히고 L.A로 나와서 우리와  거래가 있는 한인 밀집 상가에 들렀더니

우리를 반가워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우려를 많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반반이었다

더우기 한인 교포들은

"아이를 잃어버리려 한다" "여기오면 자식 망친다" 라는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것이였다.

며칠 전에도 유학 온 여학생 하나가 마약을 하다가 실종되었다는둥,

안 좋은 이야기만 많이 하는 것이었다.

움찔하는 마음에

L.A는 정말 우리 자녀들이 유학하기에는 안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였고,

1박을 하는 호텔에서도 밤 9시를 넘어서는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경고아닌 경고를 유리창에 써 놓은것을 보았다.

 

우리 가족들은 다음날  여동생이 살고 있는 뉴져지로 날아갔다.

뉴어크 공항에 마중나온 여동생 부부는 우리를 자기들 집으로 안내 하였고 

다음날 우리는 그곳에서 동생부부가 미리 예약한

뉴져지 시내에 위치한  사립 학교로 가서 면담을 시작했다.

그곳은 큰 도시에 있는 학교라 학생 수도 많고, 안내하여주는 여선생의 옷차림도 그렇고

세련된 모습이며 그 안내하여주는 자세가 기계적인 전문 비지니스맨같은 자세라고 느꼈다.

한마디로 찬바람이 쌩쌩부는 느낌이랄까?

마음속으로 안되겠다는 느낌이 왔는데....

아이들 생각을 물어보니 우리 아이들도 아니라는 대답이였다.

동생부부에게 좀 아니다라고 얘기 했더니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이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 영어는 확실히 가르켜 줄텐데...."하면서

아쉬움을 나타내는 것이였다.

그렇지만, 내 자녀를 위하는 길인만큼 내 결단이 필요한것이었다.

동생에게는 한국으로 들어가서 결정을 하고 연락하기로 하고 며칠뒤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15일의 여행 겸 학교 면담을 하고 돌아와 보니 아이들은 마음이 들뜨고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유학을 보내야 하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였다.

일단은 큰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졸업장은 받아가지고 유학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유학을 결심하는 순간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주한 미대사관에서 미국영사가 한국인 유학생 비자를 내주면서

한명당 일천만원씩 받고 비자를 내준것이 본국 감사에 걸려서

유학 비자 신청과 유학길이 완전 막히는 사건이 터진것이었다.

결국은 미국으로의 유학은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남미이주 공사에 연락을 취하고 면담과 동시에 카나다 이민 수속을 밟기 시작하였다.

이미 카나다에는 큰동서네가 1년전에 밴쿠버로 이민을 간 상태라

94년 여름방학 동안을 이용하여 우리 부부만 다시 카나다로 날아갔다.

아이들 학교가 급선무 였기에 학교를 알아보러 밴쿠버로 갔다.

아이들의 학교 선택과 진로를 위하여 매니저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그 매니져를 5분정도 면담하기 위하여 카나다로 날아 간것이었다.

카나다에서 일주일을 큰동서와 묵으면서 상황도 알아보고 매니져를 만나보니

매니져 비용을 1인당 년5,000불의 카나다 돈을 요구 했다.

돈은 좀 들더라도 아이를 맡길만한 사람이 그 사람 말고는 딱히 더 없었다.

그 사람에게 부탁하기로 하고 우리는 서울로 들어와서 준비를 하고는

1995년 3원 15일에

카나다 이민 비자를 받은지 3일만에 카나다로 이민을 들어가게 되었다.

 

 

 

##   자녀들을 해외에 유학 보내려는 부모들에게 

 

            자녀를 유학 보내려는 부모님들이 심사 숙고해야 할 조건이 있다.

 

1. 친척이나 친구에게 자녀를 떠 맡기지 말라.

      미국에서 친척이나 친구들은 일을 하러 나가기 때문에 자기 자식도 돌볼 시간이 없다.

      하물며 남의 자식을 잘 돌보아 주고 가디안까지 잘 해준다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

      물론 친척에게도 홈스테이 비용을 여유있게 많이 지불해야만 한다.

      만약 이런 경우   잘 하면 본전이지만, 잘못하면 그 친척과는 영원히 웬수가 된다.

      차라리 홈스테이는 학교에서 소개해 주는 현지인 홈스테이나 남이 훨씬 낫다.

      현지인을 잘 만나면 책임감이 있기에 기본적인 의무에는 충실하다.

      되도록이면 학교장이 추천하는 홈스테이가 가장 좋다.

      또한, 자녀를 친척에게 맡기면 열에 아홉은 돈을 빌려달라는 이야기가

      2-3개월후에  나온다.  내심 거절 못 할꺼란 심리에서이다.

      한국부모가 한번씩 방문할때마다 바리바리 선물을 싸 가야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친척이나 친구에게 선물을 안 사다주면 무척 서운해 하니까.........

 

2. 유학을 보내면 여기 부모님들은 돈만 보내주면 된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없던 자유가 생기므로 자녀들이 자유와 방탕을 혼돈하는 수가 있다.

      돈은 많이 보내주어도 안되고 아주 조금 모자랄 정도로 보내 주어야 적응하며 아껴 쓴다.

      미국 물가는 한국 물가의 거의 한배 반이나 두배 수준이다.

      남자애들은 친구들과 소주방이나, pc방을 매일 전전한다.

     

3. 자녀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하며 부모님 중에 한분은

   꼭 두달에 한번은 자녀에게 가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술과 담배, 심지어는 마약에 노출되어 있으니 깊은 관심만이 예방책이다.

     친구관계를 유심히 살펴라.

     그곳에서도 친구를 잘 만나야 성공적인 유학이 된다.

     한국아이들은 마약은 잘 안하지만,

     중국이나 대만, 홍콩 기타 지역에서 온 아이들과 어울리거나 현지인들과 어울리면 혹시 마약에 손댈 수 있다.

     아침 등교시간에 학교앞에서 마약을 자기네들 끼리 사고 판다.

 

4. 남학생들은 유학을 원하면 보내주되 부모가 명심 할것은

    아이가 담배를 피는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만큼은 절대 담배 안 핀다라는 생각을 꼭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부모의 생각을 먼저 알고 있다. 역이용하는 것이다.

     만약에 담배를 핀다면 마약을 할 염려가 있다.

 

5. 여학생들은 되도록이면 유학이나 연수를 보내지 마라.

     외롭기도 하지만 그때 누가 옆에서 조금만 친절하게 거들어 주기만 하면

     금방 그 사람에게 빠져 버리게 된다.

     많은 여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연히 유혹도 심하다.......

 

6. 대학생때 유학을 보내면 성숙한 생각에서 탈선을 덜 할꺼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유학 온 여대생의 경우 영어를 배운다는 이유로

     외국인 남자를 사귀거나 외로워서 외국인과 동거를 하거나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한국 학생과도 동거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친절한 한국교회에 나가면 한국교포들에게 매수되어

     자기집에 홈스테이를 시키고  자기아들과 교제를 시켜서

     자기 아들과 결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한국교포들이 쳐 놓은  그물인셈이다.

     이런 경우, 유학이 아니라 다 키워 놓은 자녀를 미국이나 카나다에 빼앗기는 꼴이 난다.

     그제서야 엄마는 울고 불고 난리를 치고.........

 

7. 한국에 있는 유학원을 절대 믿지 마라.

     그들에게는 많은 이권과 돈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학생 한명을 보내주면

     현지 학교에서는 얼마간의 소개료가 입금되는 시스템이기에

     좋은 학교와는 상관없이 소개료를 많이 주는 학교로 아이들을 보내려 한다.

 

8. 자녀를 유학 보내려 한다면

   부모와 학생이 직접 현지에 가서 발 벋고 나서서 알아보고 보내라.

     현지 학교 답사와 홈스테이를 일일히 찾아다니고 집주인들을 만나보고

     정해주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다.

     그래야 나중에 부모가 마음 고생을 덜 한다.

 

# 두서없는 몇가지지만, 가슴속에 잘 담아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