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드는 향수, 클래식카의 매력
기자 주변인 중 경매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있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전문경매사가 된다. 현재 그녀는 미국 뉴욕에서 전문경매 업무를 배우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다양한 경매를 주관하는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 때 그녀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집가들을 만난 적이 있다. 커피에서 유리잔, 트랜지스터 라디오 등 모을 수 있는 건 죄다 수집하는 이들을 보며 국내에도 수집문화가 점차 확산됨을 실감하곤 했다. 이 처럼 수집취미를 가진 이들을 흔히 콜렉터(Collector)라 부른다. 이 중 특히 오래된 자동차를 수집하는 이들은 당연 클래식카 콜렉터일 것이다.
넓은 의미로 클래식카 콜렉터는 마니아를 포함하지만 조금 깊게 들여다 보면 콜렉터와 마니아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콜렉터는 수집이, 마니아는 즐기는 게 목적인 것부터 다른 데다 콜렉터는 어느 정도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물론 이에 반박하는 마니아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클래식카 수집 취미는 이른바 '경제력'이 있어야 가능한 '귀족 취미'로 기자는 보고 있다. 클래식카의 가치가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클래식카 문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은 두 가지로 나눠진다. '없다'라고 단언하는 이들과 '태동기'라 여기는 이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답만큼이나 두 부류의 차이 또한 극명해 '없다'고 단정짓는 대부분은 콜렉터인 반면 마니아들은 '시작되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콜렉터든 마니아든 공통적인 현상은 클래식카를 보는 것 자체가 기쁨이자 즐거움이란 점이다.
두 부류는 또 클래식카를 보는 순간 그 시대로 되돌아가는 듯한 '향수'에 젖는다고 한다. 특히 오래된 차는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보게 하고, 자신의 과거를 반추시킨다는 점에서 클래식카에 빠져드는 매력은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소유자만의 자기만족이 크다.
오래된 차가 주는 매력 중에는 '개성'도 있다. 클래식카 문화를 논하기 위해 찾은 자영업자 백도민(36) 씨가 딱정벌레차로 유명한 구형 비틀을 거금 600만원을 주고 구입한 이유는 단 하나. 개성 때문이다. 부품구입이 어려운 탓에 자칫 고장이라도 날까봐 주말에만 이용한다는 백 씨는 국내 클래식카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다.
"클래식카 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개성이 강합니다. 개성은 표출돼야 하는데, 마땅히 드러낼 만한 도구가 없어요. 또 대부분의 수집대상은 부피가 작아 노출이 곤란하잖아요. 자동차만큼 눈에 잘 띄는 게 또 어디 있겠어요"
클래식카 수집이 일반화돼 있어 희귀차종을 찾아헤매는 이들이 많은 독일의 경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클래식카들이 경매에 출품되기 무섭게 새 주인이 나타난다. 기자가 잘 아는 독일 오토미디어의 편집장 안드레아스 콘라트는 클래식카를 찾아다니며 시승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두는 게 직업이다. 그는 "클래식카의 진정한 매력은 회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세계에 몇 대 남지 않은 호르히 850이나 히스파노 수이자, 벤츠 770 리무진, 페라리 360 나트 스파이더같은 차는 더욱 그렇다고 힘줘 말한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적인 건 클래식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움직임은 실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전같으면 가끔 TV에나 등장했을 차들이 시내 도로를 버젓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가 하면 그 멋진 모습에 이끌려 클래식카 사이트를 찾거나 구입을 문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해외 유명 클래식카를 수집하는 대구의 이상철(45) 씨는 "최근 특정 모델을 구입해달라는 요청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희귀모델은 주로 유명 경매장이나 올드 타이머(Old timer)같은 클래식카 페스티벌을 통해 나올 수 있어 입수 자체가 쉽지 않다"고 조언한다. 또 고가 모델은 수집 후 조용히 보관하는 사례가 많아 찾는 데만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귀띔한다.
일례로 미국이 사담 후세인 대통령궁을 점령했을 때 이 곳에 가격으로만 10억원이 넘는 유명 클래식카 수백 대가 즐비했다고 한다. 이를 미뤄 볼 때 한 번 소유한 모델은 여간해서 다시 내놓지 않는 앤틱(Antique) 중 하나가 클래식카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두고 오히려 소장가치를 높여 클래식카 문화의 귀족성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클래식카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 지 정확히 단언하기란 어렵다. 혹자는 공유함으로써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한다. 기자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국내 한 중소기업 경영자는 히틀러가 애지중지했다는 벤츠 770 리무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차의 경우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히틀러는 물론 1940년대 당시 최고의 황족이 탄다는 권위에 일본 황실에서도 3대를 구입했던 벤츠 770 리무진 중 1대는 전쟁으로 사라졌고, 나머지는 지금도 일본 황실 내에 보관돼 있다. 그는 "벤츠 770 리무진의 역사적 가치를 볼 때 꼭 갖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으나 구입한 후 전시라도 할 계획이냐고 묻는 말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 클래식카는 공유가 아닌 소유의 즐거움이 더 큰 셈이다.
이와는 달리 클래식카를 열린 공간으로 끌어내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다. 최근 경기도 부천시가 자동차박물관을 짓기로 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부천시는 건물만 제공하고 이 곳에 자리할 클래식카는 단 한 명의 소장품으로 알려졌다. TV 프로그램 중 시대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클래식카를 제공해 왔던 이가 '혼자서 즐기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향수를 나누자'는 뜻에서 기증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클래식카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에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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