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더 칼리스타 Panther Kalli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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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 Kallista' 전국 Tour

天摩山房(천마산방)

이 가을에 / 그들은 왜 헤어졌을까?

peter홍 2024. 11. 25. 18:11

금일은 일요일인데도 아내와 함께

'MRI'를 찍으러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4시까지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지난 2월에 두경부암이 발견되어 4월에 수술을 하였는데,

"혹시나 재발이 된 것은 아닌지?" 하는 確認次 촬영 날짜가 잡힌 것이었습니다.

 

일요일이라 병원이 쉬는 날인데도 MRI촬영은 쉬지를 않아서

예약시간에 맞춰서 촬영 대기하시는 분들이 여럿 계셨습니다.

아내는 가자마자 患者服으로 갈아입고 촬영 대기 상태로 있었고,

필자는 複道에 있는 대기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게 되었습니다.

 

 

 

필자 부부의 지금까지 결혼생활은 잘 해온 것일까? 하는

필자만의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우리 부부의 

"결혼"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필자가 군대에 入隊하기 前인 1973년 경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필자가 아내에게 반하게 되어  1년여를 쫓아 다니고 사귀는 도중에

군입대 令狀이 떨어지고, 1개월 후에는 군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아내는 정말 많이도 울었습니다.

 

 

 

1974년 4월에 입대하여

원주에 있는 "육군 제1하사관학교"로 가게 되었고,

6개월의 고된 훈련기간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훈련 2개월 차에 한번의 일요일 면회가 가능하였고,

4개월 차에 두 번째 일요일 면회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그때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기차를 타고 원주까지 힘들게 함께 면회를 와 주었습니다.

그때 상황이 너무 고맙고 감격해서

"이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서게 되는 契機가 되었습니다.

 

 

 

6개월의 훈련을 마치고 동해안에 있는 해안 부대로 배치가 되었는데

自隊인 동해안 "안인 分哨""낙산 分哨"에도

아내는 두 번의 면회를 왔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영동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前이라

그 흔한 고속버스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내가 동해안으로 처음 면회를 올 때에는 

토요일 저녁에 청량리에서 강릉행 밤기차를 타고 8시간을 달려서

일요일 아침에 필자에게 면회를 와서는 잠깐 얼굴을 보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되돌아가고는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우리 부대에서는 "당연히 면회를 자주와 주는 여자와 

결혼을 할 것"이라는 군인들만의 암묵적인 默契가 있었습니다.

부대원들 모두 "이렇게 힘들게 면회까지 오는 여인을 두고

어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겠느냐?"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요.

만약에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면 그것은 배신을 넘어

天罰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필자는 3년의 군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1977년 1월에 만기 제대를 하였고,

1979년 4월 2일에 우리들은 兩家의 祝福 속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필자 부부는 아들 두 명을 낳았고, 잘 길러서 캐나다 幼學도 시키고

착하고 예쁜 두 며느리들도 잘 맞아들여서 지금은 손주들이 세명이나 됩니다.

 

 

 

왜? 지금 와서 이런 지나온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하느냐?고 한다면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결혼"도 힘들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혼"도  너무나 쉽게 하는 세대와 우리들이 같은 空間에서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결혼'도 쉽지 않지만, '이혼'은 더 어렵고 힘든 일인데도

너무나 쉽게 이혼들을 하고 남남으로 돌아서는 세대가 많아 졌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너무도 사랑하는 두 男女가 서로 떨어지기 싫고,

같이 있고 싶어서 하는 것인 만큼, 그 사랑이 식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기간이 아무리 10년이 넘고 깊이 사랑하는 사이라도

'아기'를 안 낳고 강아지만 키운다면 남자들은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혼의 城은 너무 취약한 구조속의 모래성이 아닐까 합니다.

너무도 쉽게 무너지기 않을까? 하는 걱정뿐입니다.

 

 

 

사랑의 結實이라는 "아기"가 꼭 存在해야만 서로 간의 연결고리도 생기겠지만,

퇴근 후에 아기가 보고 싶어서 일찍 퇴근하여 집으로 오는 것이 남자들입니다.

남자로 하여금 家族에 대한 保護 본능이 생기는 것이지요.

자기의 가족. 즉, 처 자식을 保護하겠다는 남자들만의 本能말입니다.

 

 

 

원래 남자들은 예로부터 밖에 나가서 사냥을 하고 가족을 지키는 전사가 되며

여자들은 집에서 살림하고 아기를 키우는 본능으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어디에서 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겠지만

결혼을 하여도 아기를 안 낳고 강아지만을 키우고 있으니

남자들의 "자기 자식을 낳아 代를 잇고 싶다"

기본적인 본능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욱이 시부모님의 아기를 낳으라는 聲華와 잔소리에 귀가 아플 것입니다.

시부모 입장에서도 "며느리가 아기를 안 낳겠다"라고 한다면 

정녕코 그 며느리를 이쁘고 귀여워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아들을 이뻐할까요?

시부모 입장에서라면 며느리를 설득하거나, 아들을 설득하여서라도

아기를 낳게 할 욕심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라면,

사랑하는 아들부부를 시부모들이 앞장서서 이혼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가족들과도 멀어지고, 내 편이 없이 이혼을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남편은 이혼을 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아기를 낳고 잘 살겠지요.

너무 한쪽만의 利己心으로 인생을 그르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아기를 낳고 힘든 일들도 서로 격려하면서 살아야

서로 간의 부부간의 사랑도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꼭, 부탁드리건데 아기를 두명만이라도 낳아서 잘 키우세요.

老後를 위해서도 後世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심지어,

과일 나무들도 자손을 퍼뜨리기 위하여

더운 여름날을 견디고 추운 겨울날을 견디어서

마침내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는 맺는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理致는 단 하나입니다.

진리입니다. 역행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세상사는 삶의 "結果"도 매우 重要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