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의 忠臣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圃隱 鄭夢周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친한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라는 인물이 또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http://www.oneclick.or.kr/bbs/boardView.do?id=81&bIdx=37797&page=1&menuId=133
圃隱을 장사지낸 추령에 얽힌
충신 金 自粹의 일화도 감동을 일으킨다.
김자수는 본관이 경주로 자는 순중이고 호는 상촌(桑村)이다.
벼슬은 도관찰사에 이르렀다.
경북 안동에 그가 살던 옛 집터가 있고, 그의 효자비가 있다.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한 후 정몽주와 친한 김자수를
사헌부 대사헌에 임명하기 위해 불렀다.
그러나, 김자수는 병을 핑계삼아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후 태종이 형조 판서를 제수하여 조정에 나오기를 명했다.
김자수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당에 들어가 조상께 이별을 고했다.
" 이 몸이 세상에서는 편히 쉴곳이 없사옵니다. 불초 소자도 조상님들의
뒤를 따르겠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김자수는 아들에게 장사지낼때 쓰는 흉구(초상때 쓰는 기구)를 들려
뒤따라오라고 명했다. 부자는 길을 떠나 며칠 후 광주의 추령에 이르렀다.
" 얘야 여기가 내가 죽을 땅이다. 비록 여자일지라도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아니하거늘, 하물며 신하가 되어 두나라의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느냐? 내 뜻은
이미 결정되었느니라. 너는 내 시신을 거두어 추령 근방에 매장해 다오. 그리고
절대로 비를 세우지 말고 초목과 함께 시신이 썩게 해 다오 "
" 아버님, 부디 고정하소서. 숨어서라도 목숨을 보전하소서 "
" 아니다. 망국의 신하가 가야할 길은 구차한 삶이 아니다. "
김자수는 절명사 두 구절을 지었다.
내 평생토록 충성하고 효도하는 뜻을
오늘에 와서 그 누가 알이 있으리오
마침내 김자수는 독약을 마시고 아들의 품에 쓰러졌다.
그 후 광주의 추령은 충신의 영마루가 되었다.
한국 대표 야사 "조선시대 편" 중에서
'<길을묻는 나그네>의 세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의 <의료보험>시스템을 시작한 대통령 (0) | 2020.03.28 |
---|---|
봄이 오는 길목 / 팔당댐 (0) | 2020.03.01 |
봄이 오려나 (0) | 2020.02.20 |
지난 가을날의 화려함 (0) | 2020.02.17 |
겨울 소묘 (0) | 2020.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