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은 태평시대의 임금으로, 술잘 마시고 노래와 춤을 좋아하며
항상 대궐안에 연회를 베풀고 기생을 불러 노는 것이 일과라고 할 만하였다.
成宗은 세조의 맏아들인 德宗의 둘째 아들로 자기 아버지 덕종이 일찍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세조의 손자인 者山君( 자산군이라 하였다가 다시 者乙山君이라 고쳤음 )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성종이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있고 영리하며 마음이 너그러우므로 세조가 특별히 사랑하였다.
하루는 자기 형이 되는 月山君과 같이 대궐안에 있었는데.
별안간 소나기가 퍼부으며 불이 번쩍하고 우레소리가 천지를 흔드는듯하더니
백충신이라는 사람이 벼락을 맞아 죽자 좌 우에 있던 사람이 모두 정신을 잃고 엎드렸는데
자산군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태연하게 앉아 있어 여러사람들은 그의 태도에 감탄함을 마지 않았다.
이때 세조와 그 왕비 정희왕후 윤씨 두분의 칭찬이 대단하였는데,
그 어려운 일을 당하여 저렇게 태연하게 움직이지 않는것은 태조대왕의 성격 그대로 받은것이라며
장차 큰 인물이 될 징조라 하였다.
성종의 아저씨되는 예종은 본래 몸이 약한데다가 임금이 된후에
국무다단함을 감당치 못할만큼 쇠약하여 결국 임금이 된지 1년도 채 되기 전인 나이 20세의 약관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고 그의 형님되는 덕종에게 아들 형제가 있을 뿐으로,
차례를 말하면 덕종의 맏아들인 월산대군이 임금이 될것이나,
이때 왕실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지위도 높은 이가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윤씨로 이제 누구에게 왕위를 정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정희왕후 윤씨의 말한마디로 결정이 나게 되었다.
윤씨가 자기 큰 손자 월산대군을 버리고 둘째 손자로 임금을 결정한것은
비내리는 날 벼락칠때에 꼼짝도 하지않고 태연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자을산군에게 입승대통을 명한다하면서 국보인 옥새를 전하였다.
이리하여 성종은 예종의 뒤를 이어 임금의 자리에 나아가니, 그때의 나이가 13세이었다.
벌써 10세살때에 당시 영의정으로 있던 한명회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자연히 성종이 임금이 되자 한씨로 왕비를 정하였으나, 그는 왕비가 된지 5년만에 새상을 떠났다.
성종은 전날 붕상시사로 있던 윤기무의 딸을 사랑하여 숙의를 삼았는데,
윤씨는 절세 미인인 까닭에 성종의 사랑은 더욱 깊어 갔다.
성종은 대궐안에서는 할머니되는 세조왕비인 정희왕후 윤씨와 어머니되는 소혜왕후 한씨
숙모되는 예정왕비 안순왕후 한씨등의 세분 왕대비를 모시고 있는 터에 그들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였으며,
자기 형인 월산대군에 대하여 경의도 특별하였기 때문에 항상 대궐안에서 항상 소연을 베풀었다.
(1부 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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