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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이터햄 슈퍼 7 이야기

[스크랩] 케이터햄 수퍼 세븐

peter홍 2006. 3. 14. 17:59
꿈의 목록 1호에 올라 있는 ‘궁극의 스포츠카’를 타다
Caterham Super 7
 
퓨어 스포츠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꿈의 차, 케이터햄 수퍼 세븐을 일반도로와 트랙에서 이틀간 타봤다. 57년 로터스의 콜린 채프만이 만든 초경량 스포츠카 세븐은 73년 케이터햄에 인수되어 명맥을 잇고 있다. 오늘날 수퍼 세븐 키트카에 가장 많이 쓰이는 파워트레인은 포드의 2.0L 제텍 엔진과 5단 MT. 운전자세가 불편하고 비실용적이기 이를 데 없지만 운전자와의 완벽한 교감, 매니아만이 이해할 수 있는 컬트적인 분위기가 압권이다
 

크로스오버, 퓨전카 등 여러 차종의 장점을 혼합해 하나의 패키지에 구현하는 것은 요즘 컨셉트카와 새차의 주된 추세다. 세단 중에서도 웬만한 고성능 스포츠카보다 핸들링과 가속성능이 좋은 차가 있고, 웬만한 쿠페형 모델의 카탈로그에서 스포츠카임을 내세우는 문구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스포츠카와 GT는 이미 분류할 수 없을 만큼 그 경계가 허물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스포츠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필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차는 예나 지금이나 케이터햄 수퍼 세븐이다. 
 
콜린 채프만의 경량화 철학에 기초
 
운송수단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운동성능과 운전의 즐거움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진 차들 중에서도 보통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수퍼카나 이그조틱카가 아니고, 점차 무겁고 호화로워지는 요즘의 스포츠카와도 철저히 다른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케이터햄 수퍼 세븐은 퓨어 스포츠의 정점에 서 있는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이터햄 수퍼 세븐은 로터스 세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로터스는 콜린 채프만이 설립한 소규모 회사에서 출발했다. 콜린 채프만의 첫 작품은 30년식 오스틴 세븐을 개조한 경주용 모델로, 로터스 MkI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52년 그는 로터스 엔지니어링을 창립하고 그 때까지 오스틴을 베이스로 해오던 것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섀시를 갖춘 로터스 6을 개발해 53년부터 팔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가벼워야 한다’는 채프만의 철학에 따라 가볍고 강성이 높은 스페이스 프레임에 얇은 알루미늄 보디 패널을 덮은 초경량 스포츠카였다. 당시의 영국 자동차 세법은 완성차에 세금을 매겼으나 자동차 부품은 면세였다. 로터스 6은 가격경쟁력을 위해 부품상태로 팔렸다. 강관 스페이스 프레임의 가벼운 섀시와 값싼 영국 포드의 부품을 쓴 로터스 6은 적당한 값에 당시로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로터스 6으로 자신감을 얻은 콜린 채프만은 본격적인 로드카 제작에 뛰어들어 사세를 확장하기로 결정하고 로터스 엘리트의 개발을 시작했다. 엘리트의 개발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회사에 지속적인 수익을 가져다줄 모델이 필요했던 그는 동시에 로터스 6을 개량한 로터스 7을 만들었다. 로터스 세븐은 기본적인 구성이 앞 모델 식스와 비슷하지만 차체가 조금 더 크고 앞 서스펜션에 더블 위시본을 썼다.
 
1957년 10월 런던 모터쇼에서 로터스 세븐 시리즈 1과 로터스 엘리트의 프로토타입이 공개되었다. 로터스 세븐은 6과 마찬가지로 고출력 엔진이나 복잡한 서스펜션에 의지하지 않고 가벼운 차체로 고성능을 이끌어내는 차였다. 일반적으로 엔지니어가 스타일링까지 맡은 차들은 외관이 상당히 어설프거나 완벽한 기능미를 자랑하는데 세븐은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레이싱카의 영향을 많이 반영한 차체 구조와 가벼운 몸무게를 통해 구현되는 높은 수준의 운동성능으로 로터스 세븐은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되어 엘리트의 개발을 위한 자금확보뿐 아니라 로터스의 명성을 높이는 공까지 세웠다.  
 
73년 로터스 세븐의 생산판매권 인수
 
1959년 새 공장을 건립한 로터스는 엘리트의 양산과 함께 로터스 세븐 시리즈 2를 시장에 내놓았다. 스페이스 프레임의 일부 강관을 없애고 리벳으로 고정된 보디 패널이 그만큼의 하중을 나눠 지게 한 세븐 시리즈 2는 차체가 더욱 가벼워졌을 뿐 아니라 파이버글라스로 만든 노즈 콘과 펜더를 써 값도 내렸다. 채프만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때로는 차의 내구성을 희생하기도 했다. 1등으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뒤 차가 주저앉는 것은 그에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때로는 계산을 잘못하거나 드라이버의 스타일이 맞지 않아 레이스 도중에 차체가 뒤틀리거나 균열이 생기는 일도 있었다. 이렇듯 안전성이 뒤떨어지니 그를 ‘드라이버를 위험으로 내모는 악당’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로터스 세븐 시리즈 2도 경량화의 대가로 내구성을 희생했다. 1961년 재규어 E타입이 출시되자 로터스 엘리트의 판매가 눈에 띄게 줄었다. 완성차이면서 고성능과 럭셔리함을 겸비한 재규어 E타입이 엘리트보다 그리 비싸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븐은 지속적인 인기를 끌어 로터스에 안정된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1969년 10월 로터스는 시리즈 2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프레임의 내구성을 보강하고 포드 엔진에 자체개발한 트윈캠 헤드를 얹은 시리즈 3을 선보였다. 로터스 세븐 시리즈 3은 6개월 뒤 시리즈4에 자리를 물려주었다. 시리즈4는 3보다 차체가 많이 크고 스타일링도 완전히 바뀌었다. 글라스파이버와 알루미늄 보디 패널을 함께 쓴 3과 달리 시리즈 4의 보디패널은 100% 글라스파이버였다.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기구도 바뀌고 커진 차체에 어울리게 인테리어도 넓어졌다.
 
1973년 콜린 채프만은 세븐을 단종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로터스 세븐의 총판을 맡고 있던 케이터햄사가 남아 있던 부품 재고는 물론 차체 제작에 쓰인 모든 공구와 함께 세븐의 저작권까지 인수해 자동차 제작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시리즈 4를 생산했으나 채 100대를 완성하기도 전에 글라스파이버 후드를 만들던 납품업체가 값을 터무니없이 올려 난항을 겪게 되었다. 마침 많은 세븐 팬들이 케이터햄에 시리즈 3의 부활을 요청하고 있던 터라 케이터햄은 시리즈 4 대신 3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포드의 2.0L 제텍 엔진 얹은 키트카
 
이렇게 탄생한 케이터햄 세븐은 여전히 57년 처음 만들어진 시리즈 1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나 세부적인 부분에서 많은 개선이 뒤따랐다. 세븐을 기초로 안전성과 내구성을 보완했지만 주행에 직접적인 필요가 없는 편의장비들은 철처히 삭제한 초경량 스포츠카라는 컨셉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편안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차다. 물론 편안함을 버린 대신 운동성능은 다른 차가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 엔진 튜닝에 따라 달라지지만 0→ 시속 100km 가속에 걸리는 시간은 4초대 이내다.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팔리는 케이터햄 수퍼 세븐에 가장 많이 쓰이는 파워트레인은 포드 포커스, 머큐리 쿠거용 4기통 2.0X 제텍 엔진과 유럽포드 시에라에서 가져온 5단 수동변속기다. 포드 제택 엔진의 블록과 헤드에 실린더 당 하나씩의 드로틀 밸브를 갖춘 인디비주얼 흡기 방식이고, 엔진 제어는 인디카에 많이 쓰이는 팩텔이라는 시스템을 쓰고 있다. 또 고객이 원하면 다른 엔진을 쓰거나 제텍 엔진을 고성능으로 튜닝할 수도 있다. 지금은 4기통 듀라텍 엔진을 기본으로 얹기 위한 준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제텍 엔진의 본체가 주철인 것과 달리 듀라텍 4기통형은 알루미늄 블록을 쓰고 있다. 이는 경량화를 지상과제로 삼은 콜린 채프만의 철학에도 부합된다.  
 
케이터햄 수퍼 세븐은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뺀 모든 부품이 하나의 패키지로 구성된 키트카다. 시트와 계기류, 타이어까지 포함되어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팔리는 케이터햄 수퍼 세븐에 기본으로 달린 타이어는 금호 제품이다. 베이스 키트의 값은 2만 달러 선이고, 기본형 완성모델은 3만 달러 선에서 시작된다. 키트 조립에 걸리는 시간은 숙련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80시간 내외이고 기본적인 공구와 리벳 건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  
 
케이터햄 수퍼 세븐이 로터스 세븐과 가장 다른 부분은 리어 서스펜션이다. 로터스 세븐은 일체식 차축을 썼지만 케이터햄 수퍼 세븐은 드디옹 액슬 타입을 쓰고 있다. 드디옹 액슬 방식은 독립식 서스펜션에 비해 구조가 간단하고, 일체식 차축의 장점(바퀴의 대지 캠버가 항상 90°)을 유지하면서 스프링 아래 무게를 낮출 수 있어 뒷바퀴 주변 공간이 협소한 케이터햄 수퍼 세븐의 구조에 잘 어울린다. 
 
낮고 불편한 운전자세로 바퀴까지 보여
 
필자의 드림카 목록 최상위권에 자리잡은 케이터햄 수퍼 세븐으로 도로주행을 잠깐 해보고 트랙에서 이틀을 보내는 황금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 차에 타고 내리는 것이 고난도의 요가나 체조를 방불케 할만큼 불편한 세븐은 낮게 앉아 팔 다리를 쭉 뻗은 운전자세를 만든다.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헤드램프 버킷에 반사되는 풍경이 아름답다. 이 차는 고정식 펜더와 사이클 펜더의 두 가지 보디 스타일이 있는데, 사이클 펜더 모델은 운전석에서 앞바퀴 움직임이 그대로 보여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스티어링 움직임에 따라 각도를 바꿀 뿐 아니라 요철을 지날 때마다 바퀴가 위아래로 들썩들썩하는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대시보드는 대단히 심플하다. 헤드라이트 와이퍼, 히터 등의 스위치와 턴 시그널용 토글 스위치 등은 자동차용이라기보다 세운상가에서 구해 조립한 가전제품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스포티한 분위기를 낸다.
 
클러치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지만 반 클러치 영역이 조금 좁은 편이다. 클러치 용량보다는 차가 너무 가벼워서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차 무게는 옵션에 따라 달라지지만 500kg에서 왔다갔다하는 수준이다. 진공 부스터가 달리지 않은 브레이크는 좀 무겁게 느껴지지만 제동 컨트롤이 쉽다. 초반에는 좀 무거운 듯하다가도 밟아주는 힘에 비례해 제동력이 살아나는 느낌이 포르쉐 브레이크와도 비슷하다.
 
스티어링 반응도 아주 샤프해 차가 독심술을 품고 운전자의 의도를 미리 헤아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스티어링 휠이 조금 무겁게도 느껴지지만 조작할 때는 약간의 지체도 없이 운전자가 꺾는 방향으로 파고든다. 포르쉐나 코베트 같은 고성능 스포츠카들도 스티어링의 반응이 빠르고 민감하지만 감각적인 면에서 적잖은 차이가 있다. 파워 스티어링이 아니어서 느낌이 직접적인 데다 차가 가벼운 만큼 움직임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의 여운이 깔끔하다.
 
슬라이드가 일어나도 차체의 거동은 안정적이고 갑작스럽게 예측불능의 상황에 빠지지 않는다. 트랙에서 타임 트라이얼을 하는 동안 운전 실수나 오버 스피드로 코너에 진입하는 바람에 몇 번의 스핀 위기에 빠진 적이 있다. 차가 상당히 큰 각도로 드리프트하는 동안에도 카운터 스티어를 쓸 시간을 충분히 벌어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차와의 교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ABS나 VSC 같은 전자장비의 도움 없이 인간의 감성만으로 차를 컨트롤하는 운전의 원초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스포츠카가 바로 수퍼 세븐이다. 가벼운 차체 때문에 승차감은 다소 튀는 느낌이고 공기저항 때문에 최고속도도 낮다. 비좁은 차 안으로 바람이 휘몰아쳐도 빈약한 히터는 발목 부분만 달구어줄 뿐 몸을 녹여주지 못하는 등 불편하고 비실용적이기 이를 데 없는 차다. 그러나 자동차와 운전자와의 교감이라는 측면에서는 더 이상 따라올 차가 없을 만큼 뛰어나다.
 
차와 인간이 파워 어시스트와 전자장비라는 동시통역사 없이 곧바로 의사소통을 하는 운전감각은 첨단장비로 무장한 최신형 스포츠카와 극단적으로 차별화된 부분이다. 운전석 옆으로 지나가는 사이드 파이프에서 들려오는 자극적인 배기음, 아무런 파워기구도 없는 스티어링과 브레이크가 주는 직접적인 운전감각, 낮은 눈높이에서 오는 과장된 속도감, 가벼우면서 잘 설계된 차가 갖는 뛰어난 운동성능……. 이런 모든 것이 케이터햄 수퍼 세븐이 가진 매력이다.  거기에 카매니아가 아니면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차라는 ‘컬트’적인 분위기도 한몫 한다. 
 
잠깐의 도로 주행과 이틀간의 트랙 체험을 통해 드림카의 실체를 확인한 뒤, 이제 남은 과제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집으로 배달된 커다란 박스를 뜯고 부품을 하나하나 꺼내 여러 주말에 걸쳐 조금씩 조립해 완성한 차를 몰고 나서는 자신을 상상해본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를 필자도 믿어본다.
출처 : 클래식카뱅크
글쓴이 : 샘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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