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은 왕위에 오르자 丈人인 "심온"을 영의정으로 삼았다.
그러자 세종의 왕비인 심씨는 마음이 不安하였다.
태종의 강경한 외척 세력의 견제와 아버지의 권력욕이 걱정되었다.
그녀는 시어머니 '원경왕후' 민씨 형제들이 무참하게 죽는 것을 지켜 보았기 때문이다.
심온이 태종의 비위를 거슬린 것은 그가 明나라에 謝恩使로 가게 되었을때,
長安이 떠들썩할 정도로 위세를 부리고 떠난 일이었다.

상왕 태종은 심온을 몹시 못마땅히 여겼는데
그는 자신의 처남들을 없앨때 품었던 마음을 심씨 家門으로 돌렸다.
상왕 태종은 세종이 경복궁을 지키는 금위군의 軍士를 나누어
상왕의 거처인 수강궁과 경복궁을 지키게 했는데,
이때 심온의 동생 심정이
나라의 軍國大事를 상황인 태종이 처리한다고 不評한 것을 빌미로
심씨 가문을 공격하게 되었고, 심온이 이 사건의 首魁수괴로 지목된 것이다.

상왕 태종에 의해 사은사로 갔다가 명나라에서 돌아오던
심씨의 아버지 심온은 명나라 국경을 넘어오자마자
押送되어 수원에서 폄출되었고, 자진 御命을 받아 사사 되었다.
그리고 심온의 동생 심정은 고문을 받다가 죽었고,
심씨의 어머니 안씨는 관노비로 전락했다.

世宗의 왕비 "소현왕후" 심씨는 아버지의 죽음에 속수무책이었다.
세종 또한, 상왕 태종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國王으로 힘을 못 쓰는 판국이었다.
심씨의 아버지 심온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그 자신도 잘못이 컸었다.
태종은 자신의 부인 민씨의 친정을 멸문시키면서 까지
외척에 대한 강경대응의 의지를 망각한 代價로서,
심온 자신도 자제할 줄 모르는 權力慾은 自滅임을 깨달어야 했다.

한편,
심온을 제거한 臣下들은 심씨를 향해 공세를 폈다.
이들의 두려움은 상왕 태종이 세상을 떠나면
자신들에게 심씨의 복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심씨의 폐출을 강력히 주장했으나, 상왕 태종은 이를 거부했다.
그 이유는 심씨가 많은 자손을 생산했고,세종과도 금실이 좋다는 것이었다.
태종은 그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 네명을 죽였지만,
막상 민씨만은 왕비에서 폐출하지 않았듯이
세종비 소헌왕후 심씨도 그녀의 아버지와 숙부는 죽였지만,
왕비 지위만은 박탈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유종문 엮음 중에서
알림 :
위의 글은 책을 읽는 도중에
좋은 말들인 것 같아서 갈무리한 글들입니다.
필자가 쓴 글이 아니고, 책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문제가 될 시에는 삭제 조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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