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대왕이 충무공 순국 후 祭文에서
" 나는 그대를 버렸건만 그대는 나를 안 버렸다 "
(予失負卿 卿不負予)라 한 말이나,
錄勳뒤에 祭文에서
" 일등공신으로 뽑았건만 포상이 부족하다 "
(擢置元勳 未足褒旌)라 한 말은
모두 公의 공적이 너무 컷음을 말한것이리라.
선조대왕은 예관을 보내어 제사하고 의정부 우의정을 증직했으며
6년뒤 갑진년에 좌의정을 추증하고 덕풍부원군에 봉했으며,
10월29일에 선무일등공신에 책정했다.
순국한 지 45년뒤인 인조 21년 계미 3월 28일 시호를 충무라 했다.
또 영의정을 추증한 것은 200년 뒤 정조 17년(1793)이었다.
公의 무덤은 전쟁이 끝난 이듬해 2월 11일 아산 금성산 아래 모셨다가
16년 뒤 갑인년에 어라산 지금의 산소로 옮겼다.
公이 순국한 뒤 김육(金堉)이 지은 신도비가 지금 公의 무덤들어 가는
길머리에 서 있으며 묘 아래 정조대왕의 어제신도비가 있다.
정조 18년 갑인 10월 4일에 지은것은 이 한군데 뿐일것이다.
" 내 선조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에 기초가 된것은
오직 충무공 한분의 힘, 바로 그것에 의함이라,
내 이제 충무공에게 특별한 비명을 짓지 않고 누구 미명을 쓴다 하랴."
(基我烈祖中興之功者 維忠武一人之功 不於忠武特銘之而誰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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