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이 즉위하면서 경안궁주로 책봉되었다.
1403년 12월 18일 권근의 아들이자 이존오의 외손자인 남편 길창군 "권규"와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1415년(태종 15년) 4월 22일,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태종은 경안공주의 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의관 양홍달의 과실이 있었다 하여
1403년 12월 18일 권근의 아들이자 이존오의 외손자인 남편 길창군 "권규"와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1415년(태종 15년) 4월 22일,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태종은 경안공주의 병을 치료하는데 있어 의관 양홍달의 과실이 있었다 하여
그 신분을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었다.
이후 경안공주의 남편인 권규 마저 요절하였기 때문에 경안공주의 자녀들은 궁에서 길러졌다.
경안 궁주의 졸기
경안 궁주(慶安宮主)가 졸(卒)하였다. 궁주(宮主)는 임금의 세째 딸인데,
나면서부터 정숙하고 예뻤으며, 총명과 지혜도 보통 사람과 달라서,
임금과 중전[兩宮]의 사랑을 한데 모았었다.
길천군(吉川君) 권규(權跬)에게 시집가니,
부덕(婦德)이 있어서 시부모를 섬기는데 예절을 극진히 하였고,
가정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었다.
나이가 23세로서 죽으니,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임금이 애도(哀悼)하여 3일 동안 조회를 정지[輟朝]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대·소염(大小斂)에 소용되는 물건이 부족하므로,
명하여 상의원(尙衣院)의 의대(衣襨)로 부의(賻儀)를 주게 하고,
장사는 종친(宗親)의 상등례(上等禮)를 쓰게 하였다.
권규가 불사(佛事)를 행하지 못하게 청하여, 한결같이 《예경(禮經)》의 제도에 따랐다.
궁주와 충녕 대군(忠寧大君)은 천성과 기품이 서로 닮아서,
궁중에서 그 어짊[賢]을 함께 일컬었다.
궁주는 매양 충녕의 덕기(德器)가 날로 이루어짐을 감탄하였으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태종실록 29권, 태종 15년 4월 22일 기축 3번째기사 1415년 명 영락(永樂) 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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