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해 보면,
大韓民國에서 태어난 남자들의 宿命이랄까
어쩔 수 없는 병이 있었으니
그것은 무릎의 연골이 다 닳아서 생기는 "관절염"이 아닐까 한다.
태어나서 20세 전, 후에 당연히 가야 하는 軍入隊 때문인데,
군대를 제대하고 나면 사회에 복귀하거나 대학교로 復學을 하거나....
어쨌든 사회에 복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정신없이 살다 보면
군생활에서 고되게 훈련을 받은 것들과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잊어버리고 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老年이 되어 隱退를 하게 된다.
그러면,
그때에 발생되는 무릎병이 생긴다.
바로 관절이 닳아 없거나 연골이 닳아서 없어지는 그런 병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군 생활의 3년 동안 220km 행군을 3번이나 했고 유격 훈련을 3번을 했다.
그 시절에는 당연한 훈련이었고,
또 대한민국 땅에서 태어난 이상 당연한 자세로 훈련에 임했었다.
그리고 전혀 불만이나 불평도 없었고 당연한 훈련이라고 생각했었다.
육군 하사관학교에서 220km 행군 훈련을 한 번을 하였고,
自隊에 가서도 예비부대 훈련으로 두번이나 220km 行軍을 했었다.
그리고 자대에서는 충실한 前方 근무자가 되어 53연대에서
박격포 분대장으로 만기 제대를 하였다.
그러니 무릎 연골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젊어서는 몰랐고, 사는게 뭔지 生業에 종사하느라 무의식적으로 잊어버리고 살았었다.
아니, 오히려 自負心으로 살았다고 생각한다.
후회는 없었다.
이제 노인이 되어보니 무릎이 아프다.
군생활 3년 동안 무릎을 너무 혹사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남자들의 비극과 숙명이 아닐까?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듯하다.
오늘은 오른쪽 무릎이 아파서 땅을 디딜 수 조차 없었다.
결국은 작은 아들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관절 전문병원을 다녀왔다.
X-Ray, MRI를 다 찍고 결국은 수술을 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오늘은 임시로 관절주사와 염증 약을 타오기는 했지만,
일주일 후에 다시 경과를 보자고 하여 그냥 돌아왔고,
평생에 처음 "목발"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필자 자신이 슬퍼졌다.
목발이라니
참, 어려운 이야기이다.
나 자신이 목발이라니
수술이라도 하게 되어 무릎이 안 아팠으면 좋겠다.
혼자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크나 큰 행복인 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인데도
이제 생각을 조금 바꿔봐야 할 것도 같다.
"나라에 충성하면 충성자가 되어 국민들에게 찬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차별 받으면서 개인적으로는 크나 큰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라는
생각들을 곰곰 씹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점차 "국가가 나한테 뭘 해 줬을까?"를 생각해 본다.
받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국 군인들이 6,25사변때
우리나라를 도와 주러와서 희생당하거나 다친 분들이 있어서
항상 경의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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