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클리네 (Clenet)라는 자동차를 촬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1972년부터 1982년까지
Clenet Coachwork 에서 제작한 클리네는 당시의 링컨 차대를 베이스로 하여 1930년대
스포츠카의 클래식한 스타일을 구현한 소량생산차입니다. 이런 스타일링은 사실 어느시대
차인지 정말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죠.
클리네는 헐리우드 배우들이나 운동선수등 유명인사들이 소장하며 더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외형으로는 이 차가 어떤 차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만 영국차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라면 3개의 와이퍼가 달린 윈드실드, 도어, 그리고 소프트탑이 눈에 익을지도
모르겠네요. 클리네의 앞유리와 도어, 소프트탑, 그리고 트렁크 리드는 MGB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테일램프는 할리 데이비슨에서 가져왔구요. 소량생산차에서는 이렇게 기존차의
부품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속에서 다른 차 부품이 쓰인것을 최대한 감추는 것도
중요한 테크닉입니다.
인테리어도 클래식하면서 고급스럽네요. 계기의 배치는 기능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대시보드 상단의 라인과 스티어링 컬럼이 들어가는 높이를 생각하면 고전적인 분위기를
추구하면서 현대식 차의 계기배치까지 추구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AT 셀렉트레버는 대시보드에 달린 봉으로 대체되었는데 약간은 예전의 일부 프랑스차의
시프터가 연상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클리네에 대한 자세한 소개보다는 소량생산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던 소량생산차라면 쌍용 칼리스타와 기아 엘란을 들 수 있습니다.
둘 다 영국 출신이로군요. 영국?소위 백야드 빌더 (Back Yard Builder)와 키트카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영국의 자동차공업은 쇠락을 거듭해 막장에 달했지만 자동차 문화만큼은 상당히
앞서있습니다. 모터스포츠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업체들은 대부분이
영국계지요.
![](http://www.smotor.com/en/overview/images/historycar_img20.jpg)
우선 칼리스타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칼리스타는 원래 영국 팬더(Panther)사의 차였습니다.
로버트 쟌켈이 설립한 팬더 웨스트윈즈(Panther Westwind)는 30년대 재규어의 스타일을 본뜬
J72로 성공을 거두고 난 후 소량생산차 전문업체로는 상당히 다양한 차종을 출시했습니다.
그중에는 Panther 6라는 6륜차도 있었죠. 아무튼 팬더는 많은 차종을 내놓고나서 경영악화로
1980년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진도그룹 김영철 부회장께서 출장차
영국에 들렀다가 팬더와 인연이 닿아 회사를 인수하게 되었죠. 김영철 부회장은 팬더사를
인수한 후 다양한 차종대신 핵심차종 하나만 남기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팬더의 주력차종은
리마(Lima)였는데 리마를 개선한 칼리스타를 만들게 되었죠.
리마와 칼리스타의 외형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만 내용면에서는 적지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휠베이스와 차 길이가 조금 늘어났고 러닝기어가 복스홀 부품에서 포드제로
바뀌었지요. 칼리스타의 성공을 통해 팬더는 부활의 나래를 펴게 됩니다. 회사가 안정화되고
여유가 생긴 이후에는 새로운 차종의 개발에 도전하게 되었죠.
미드쉽 스포츠카인 팬더 솔로가 그 산물이었습니다.
![](http://blog.dreamwiz.com/usr/b/e/beetle69/4/beetle69_20070609194606_5977815_14.jpg)
그때까지만 해도 미드엔진차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같은 수퍼카의 영역이었고 예외적으로
72년부터 출시되어 이미 구모델이 된 피아트 X1/9가 시장에 남아있는 정도였습니다.
![](http://blog.dreamwiz.com/usr/b/e/beetle69/4/beetle69_20070609194606_5977815_12.jpg)
중저가의 미드엔진차가 없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된 팬더 솔로는 개발이 완료되고 출시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예상에도 없던 강력한 경쟁자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1984년 도요타의 MR2와 GM의 폰티액 피에로가 출시된 것이죠. 갑자기 세계최대규모의
자동차회사 두곳에서 팬더 솔로와 같은 컨셉트의 양산차가 등장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김영철 사장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 괌에서 방금 출시된 도요타 MR2를 시승해본 이후 팬더
솔로의 프로젝트를 중단하라는 장문의 팩스를 영국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요?
팬더 솔로 프로젝트는 완성되자마자 취소되었으나 이를 통해 빛을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RCA 교수였던 켄 그린리죠. 솔로 프로젝트의 디자이너를 구하기 위해 RCA를 방문했던
김영철 사장에게 켄 그린리는 자신이 디자인을 맡겠다고 제안을 했고 팬더사는 실제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은 얼마되지 않은 그에게 차 전체의 디자인을 맡기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팬더 솔로는 유럽의 많은 자동차 전문지와 신문, 방송에 등장하여 켄 그린리가
디자인계에서 주목받는 존재로 떠오르도록 만들어주었죠.
중저가 미드엔진차 시장에서 MR2나 피에로와 맞붙을 경우 자금력이 부족하고 마케팅파워가
뒤지는 팬더사의 승산이 없었던 만큼 한정생산 고성능차로 승부하기 위해 솔로 2 프로젝트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http://blog.dreamwiz.com/usr/b/e/beetle69/4/beetle69_20070609194606_5977815_15.jpg)
![](http://blog.dreamwiz.com/usr/b/e/beetle69/4/beetle69_20070609194606_5977815_16.jpg)
팬더사는 소량생산 특수차 제작업체라는 그 성격상 도요타, GM과 싸우는 것보다는 아예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같은 메이커와의 경쟁을 노리는 것이 타당한 전략이었겠죠.
솔로의 개발비용이 고스란히 회수되지 못한 비용으로 남게된 상태에서 새로운 솔로 2
프로젝트를 시작한 팬더사가 자금부족에 접어들게 된 것은 피할수 없는 현실이었을겁니다.
결국 팬더사는 88년 쌍용자동차 산하로 편입되었습니다.
쌍용은 팬더를 인수한 후 92년부터 국내에서도 칼리스타를 조립생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쌍용 칼리스타의 가격은 3천만원을 훌쩍 넘었는데 10년도 더 전의 화폐가치, 그리고 다른
차의 가격 등을 생각하면 상당한 고가였습니다.
쌍용은 칼리스타의 가격뿐만 아니라 구매조건도 아주 까다롭게 만들었는데 월수입과 직종도
일정수준 이상으로 명기되어 있었고 국내 3사의 최고급 차종이나 외제차를 이미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차를 되팔때는 쌍용자동차에 다시 팔아야 한다는 등의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칼리스타는 일반 양산차와는 차별화된 차종인만큼 쌍용자동차에서 특화된
판매및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것이었겠지만 결과는 완전 실패로 끝나게되어 78대만 생산한뒤
94년 단종되었습니다.
![](http://blog.dreamwiz.com/usr/b/e/beetle69/4/beetle69_20070609194606_5977815_20.jpg)
쌍용 칼리스타는 고성능보다는 분위기를 추구하는 스포츠카였던 반면 기아 엘란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유일한 본격 스포츠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엘란은 원래 로터스의 차종이었죠.
엘란이라는 이름은 1962년 등장한 소형 로드스터에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마즈다 미아타 초대 모델이 이 엘란을 디자인 모티브로 삼았죠. 지금도 미국에서는 로터스
엘란이라고 하면 이 60년대 엘란을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기아가 만든 엘란의 모태는 89년 선보인 로터스 엘란이었죠.
이 차는 60년대 엘란과의 혼돈을 피하기 위해 M100 Elan 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M100은 프로젝트명이었죠. (로터스 엘리제는 M111입니다.) 대체로 정통 스포츠카라고 하면
후륜구동을 채택합니다. 전륜구동의 스포츠모델은 대체로 양산 전륜구동차의 플랫폼을
활용하여 개발비와 생산코스트를 낮추기 위해 만들어지죠.
이런 면에서 처음부터 스포츠카를 표방하면서도 전륜구동으로 만들어진 M100 엘란은 자동차
역사를 뒤져보아도 상당히 특이한 존재입니다. 엘란의 구동방식은 FF였지만 경량화를 통해
고성능을 이끌어낸다는 로터스의 철학은 그대로 반영된 차였습니다. 미국시장의 불경기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마즈다 미아타에 비해 높은 가격 등 여러가지 요소로 인해 엘란의
판매는 그리 신통치 않았습니다.
M100 엘란의 미국 판매가격은 $40,000 정도였는데 화폐가치의 변화를 생각하면 지금
미국시장에서 비슷한 가격에 팔리고 있는 엘리제보다 훨씬 비싼 값이었죠.
그런반면 기아는 90년대 초부터 스포츠카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 현대는 엑셀을 베이스로 한 스쿠프를 내놓으면서 젊은층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스쿠프는 출시전 엑셀 SLC라는 이름으로 모터쇼에 발표되기도 했는데 SLC는 Sports Looking
Car의 약자였다죠.
기아도 이에 자극받아 세피아 베이스의 SLC 개발을 검토해보았으나 당시의 여건으로는
어려움이 많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방안으로 제휴선인 마즈다의 미아타 도입을
추진했으나 마즈다의 거절로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판매량으로는 스쿠프를 누를 수 없다면 성능과 내용면에서 앞서가자는 생각으로 정통 스
포츠카를 만들고자하는 의지를 가진 기아 경영진은 세피아 개발당시 기술적인 용역을 맡았던
로터스의 엘란을 들여오는 것을 검토하기에 이르렀죠.
결국 우여곡절끝에 93년 기아는 로터스로부터 엘란의 도면과 생산설비를 인수하고
국산화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기아 엘란은 이스즈제 1.6 터보대신 T8 엔진이 장착하고 세부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진뒤 96년
중반부터 생산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양산차라기보다는 수제차에 가까운 엘란은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수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차였습니다.
작고 두명밖에 타지 못하며 마무리가 거칠고 품질감도 낮은데다 소프트탑의 방수성능도
떨어지는 차가 값은 비싸다고 여겨졌던 것이죠.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현대 티뷰론과
비교대상이 되어 단점이 더욱 부각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아 엘란은 3년여동안 1200대가 생산되는데 그쳤습니다.
![](http://blog.dreamwiz.com/usr/b/e/beetle69/4/beetle69_20070609194606_5977815_19.jpg)
현재 출시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산 소량생산차는 프로토 자동차의 스피라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디자인을 비롯한 몇가지 부분에 대해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으나
아직 나오지도 않은 차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것보다는 출시된 이후를 기다려보는
것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에도 적합한 시기일것 같습니다.
스피라는 벌써 발표된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생산이나 시판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여러가지 의혹도 낳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프로토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아도 아직
정확한 출시 시기에 대해서는 알수 없더군요. 아무튼 스피라가 출시될 무렵에는 칼리스타와
엘란이 나왔을 때와는 달리 차를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파는 사람들도 소량생산차를 대하는
이해와 안목이 넓어져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클래식카뱅크
글쓴이 : 풍딩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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