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서
조금 바뿐 일이 끝났다.
하지만,
늘상하던 일인데도
이번에는 좀 힘이 든것은 웬일일까?
이제 나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폐차 수준인가?
몇일 전에
길을 가다가 우연히
정말 작은 "책방"을 발견하고는 차를 세우고 들어갔더니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하는것이다.
거의 저녁 8시경이였는데.... 신간은 눈에 거의 안띄고
그래서 골라 잡은것이
공지영님의 산문집 --"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 라는 책이다.
사 놓고는 조금 밖에 못읽었는데,
오늘 저녁은 홀가분하게 모든 일을 끝내고....읽으려니
옛날 추억같은 문장이 하나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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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우산>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시골집의 물받이를 통해 흘러내린 빗물이 현관앞으로 모여와 돌돌돌 흘러내립니다.
아이들은 장화를 신고 우산을 하나씩들고 정원에서 놀고 있습니다.
사람이 일생에서 가장 많이 잃어버린 경험을 한 단일 품목이 아마 우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20년 전 <잃어버린 우산>이라는 노래가 크게 유행한것을 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이 단순히 비나 우산이라는 물건 자체에 국한된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때 찢어지던 푸르스름한 비닐 우산은 아마 지금은 민속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까요?
비가 오는 말이면 먼저 학교로 형제가 제일 좋은 우산을 가지고 가버려 하루 종일 원망하던 기억도 있고, 엄마 심부름으로 구두와 우산을 수선해 주는 아저씨에게 우산을 가져다 준 기억도 있습니다.
학교를 마칠무렵 쏟아지는 장대비.
그런 오후에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모두 우산을 가지고 오고,
혼자만 맨 나중에 조용해진 학교를 쓸쓸히 빠져나오던 기억도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건 꼭 쓸쓸하기만 한 기억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중학교때던가 거의 폭우에 가까운 비가 쏟아지는데 친구 여섯명쯤이랑
그 빗속을 신나게 비를 맞으며 달려가던 기억.
하얀 교복 블라우스랑 검정치마랑 머리카락이 대책없이 비에 젖었는데
옆 학교 남학생들이 휘파람을 불던 기억.
대학교 2학년때던가.
짝사랑하던 선배로부터 어느날 연락이 왔습니다.
그 선배는 그때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던 중이였는데
아마 무슨 부탁을 하려고 나를 만나자고 했던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드앤드브릭이라는 곳으로 바뀐 광화문 크라운 제과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 했씁니다.
선배는 약속보다 많이 늦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추웠고 힘도 들어서 집에 가려고 하는데 그가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날 그는 자기가 가지고 온 우산을 제게 씌워주었습니다.
희한하게도 둘이 머리만 겨우 가리는 그 작은 공간에 둘이 들어서자
그와 내가 특별한 지붕아래라도 들어온듯이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은것이 너무나 잘한 일같았고 비도 절대로 그치지 말았으면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걷는 그 길도 더 길었으면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는 늦어서 미안하다면서 길거리의 양품점에 들어가더니 우산을 하나 고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아무리 집에 예쁜 우산이 많다고 거짓말을 둘러대도
그는 억지로 꽃무늬가 자잘한 하늘색 우산을 사주고야 말았습니다.
우산을 선물로 받고 그렇게 슬프기는 그때 이후로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선배는 그날 그렇게 갔지만, 나는 그게 너무 소중해서 비가 오는 날마다 우산을 펴며
그를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 우산을 애지 중지 아끼며 지내다가 그해 여름 폭풍이 몰아치던 울진 앞바다
어느작은 여관에 그 우산을 놓고 오고 말았습니다.
우산을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을때는 우리가 이미 강릉 방향의 버스를 타고 난 다음이었지요.
혼자라도 버스에서 내려 그우산을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일어서 한참을 망설이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여전히 비가 내리던 그날 저녁. 저는 함께 여행갔던 친구들에게 민박집에서 술을 한잔 냈습니다.
우산에 얽힌 기억을 말하고 하기에 그럴듯하게, 그러니까 소설을 써댔지요.
친구들이 모두 멍해져서 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섯을 보면
그때부터 이미 소설을 잘도 써댔던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그때 유행하던 <잃어버린 우산>이라는 노래도 불렀던 것 같습니다.
안개비가 하얗게 내리던 밤. 으로 시작하는 멜랑콜리한 노래.
그 선배는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그후로도 가끔 옛노래가 흘러나오는 카페에 앉아 있다가
<잃어버닐 우산>이 흐르면 그날이 생각납니다.
그선배 얼굴이랑, 울진의 폭풍치던 바다랑, 우산을 두고 나왔던 그 여관의 현관이랑, 그런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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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을 읽어도
가슴시린 추억이 어린 글같아 옮겨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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