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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운동"의 원인 제공자 / 조병갑

peter홍 2025. 1. 19. 21:52

 

 

1. 개요

조선 후기의 관료. 본관은 양주이며 자는 요성(耀成)이다.
고종 당시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의 서조카이기도 하다.
백낙신과 더불어 대표적인 조선 후기의 탐관오리로,
그의 학정은 동학 농민 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2. 생애

철종 14년(1863년)에 관직에 올랐고 고종 30년(1893년)에 전라도 고부군수로 부임했다.

부임하자마자 늘 하던 대로 조선 후기 탐관오리 특유의 각종 권력남용과 수탈을 일삼았다.
그의 대표적인 악행으로는 만석보라는 큰 저수지를 만든 것으로
이미 상류에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보[13]가 있음에도 더 큰 보를 만들겠답시고
백성들에게 땡전 한 푼 주지 않고 부역에 동원하는가 하면
보가 완성되자 만석보의 물을 쓰는데 과도한 세금을 매겨 거액의 수세를 뜯어낸 것이다.

인근의 태인군수를 지낸 아버지의 공적 비각을 세운다고
다시 세금을 뜯고 강제 노역을 시켰으며
이외에도 백성의 재산을 탐내 무고한 죄를 뒤집어 씌워
재산을 뺏는 등의 각종 악행으로
백성들에게 원성을 샀으며 만석보도 
잘못 만들었는지 홍수철마다 침수 피해가 발생해서 악명이 자자했다.

어느 날 그가 모친상을 당하자 부조금으로 2천냥을 걷어오라고 지시했다.
이에 전창혁이라는 사람이 대표로 나서서 항의하다가 곤장에 죽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것으로 인해 그동안 쌓였던 백성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전창혁의 아들 전봉준을 중심으로 들고 일어나 
동학 농민 혁명(1894년)의 시작인 고부 민란이 일어났다.
 
그는 미리 봉기한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쳐서 린치는 피했지만
이후 죄가 드러나며 조정에 의해 파직당하고 고금도로 유배당했다.

하지만, 청일전쟁 직전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이 설립한 친일 내각에 의해 석방됐고,
친일 내각 붕괴 이후에도 고종으로부터 중용받아 1898년에는 고등재판소 판사가 되어
동학 지도자 최시형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이후 고종과 친일파 양쪽에게 총애받으며 호의호식하다가
천수를 누리고 자연사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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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주장>
 
고종의 재위 31년경에
"조병갑"이라는 일개 고부군수(지금의 정읍)의
국민들에게 못된 탐관오리 짓거리로 인하여
전라도 농민들이 분노하여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으며
그 원인이 되어 역도들을 평정한다는 이유로
일본군이 우리나라에 진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36년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일본의 식민지로 살게 되었으며
국민들은 도탄에 빠지고 먹고살기 위해서
만주로 떠나는 사람들과
러시아로 떠나는 국민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지금의 중국 "조선족"과 "고려인"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